시간의 모래 (8)

 

***************

이 글은 순전히 본인이 울 마님이랑 놀려고 쓴 글임.

어떤 영화(?)에서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베껴 온 글임.

게임 'Prince of Persia-Sand of Time'에서 제목 그대로 베껴왔음.

등장인물 이름의 새로운 창작은 흰머리를 너무 늘려서 여러 소설이나 영화, 아는 사람 이름 걍 베껴 왔음.

위 상황에 딴지 걸거나 문제가 생기면 삐짐.

****************

 

 

달빛이 병사들이 들고 있는 창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우루의 뒤를 따라 걷고 있던 우건은 병사들의 모습을 살폈다. 왼쪽 허리에 모두 칼을 차고 있었고 반대쪽엔 화살이 든 통과 손도끼 세개를 차고 있었다. 어깨엔 활을 모두 하나씩 걸고 있었고, 창을 든 사람들과 커다란 도끼를 든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엄청난 무장들인데?"

우건이 중얼거리자 나란히 걷던 지연이 우건을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우건은 지연을 보며 씨익 하고 웃어준 후 말했다.

"별 일은 아니야. 그냥 이 사람들 무장이 상당하다고...."

우건의 말에 지연이 옆에 걷고 있는 병사 한명을 쳐다 본 후 다시 우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아, 그러고 보니 고구려나 백제 기본 무장이네. 아마 부여도 마찬가지일테고...."

"기본 무장이 이정도야?"

"왼쪽 허리에 차고 있는 환도는 가장 기본 무기야. 모두 공통이지, 그리고 이 시기에는 부월수 라고 해서 도끼병이 있었어. 저기 큰 도끼 들고 있는 병사들이 부월수 일꺼야. 장창병과 부월수에다가 방패에 환도를 쓰는 도부수까지가 기초 보병이야. 사실 나도 이쪽은 잘 몰라. 동현아!"

지연이 부르자 동현이 뒤를 돌아봤다.

"?"

"난 무기나 무장 체계는 잘 모르거든? 네가 우건이 한테 설명 좀 해줘라."

지연의 말에 동현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걸음을 늦춰 그들과 보조를 맞췄다.

"어디보자, 무장이라...."

동현은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병사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장창과 도끼.... 장창병과 부월수네. 장창병과 부월수는...."

"잠깐 부월수랑 장창병은 들었어, 지연이한테...."

우건이 동현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우건의 말에 동현은 고개를 한번 끄덕 하고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부월수, 장창병, 도부수에다가 편전을 쓰는 궁수까지 하면 보병체계가 딱 갖춰지지. 기마병은 도부수만 빼고 무장은 같아."

"잠깐 동현, 편전은 뭐지?"

"... 편전은 완전한 용어는 아니지만 비슷하다고 보면 되고, 우리말로는 애기살 이라고 하는데, 통아 라고 하는 대롱? 암튼 그런거에다가 넣어서 쏘는 좀 작은 화살이야. 듣기로는 현대 석궁 정도의 위력이라고 하더라. 길이도 짧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빠르고 강력하다고 하고 짧은 길이 때문에 애기살 이라고 했나보더라."

".... 그래? 뭔진 모르지만 좋은건가 보네."

우건의 말에 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있었던 건데 당연하지. 애기살을 쏘려면 각궁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복합활이 필요하거든. 다른 활로는 별 소용이 없는거고..."

동현은 말을 하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우루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좀 이상하군. 이곳 사람이 아닌듯 한데 어떻게 보면 잘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부루를 모르는 것도 이상하고...."

동현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다. 다행한 것은 우건이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우루 라고 했나요? 난 우건이라고 해요. 연우건"

"? 계루쪽인가? 연휘가람과는 무슨 사이지?"

"연휘가람? 모르는 사람인데요."

우건의 말에 우루는 되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휘가람을 몰라? 내 이름은 부여 우루, 이전에는 해우루 라고 불렸지. 해씨와 휘가람의 연씨는 뿌리가 같지. 조상이 우사(雨師)였으니까."

우루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지연과 동현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지연이 재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우사 라고 했나요?"

"그래. 그게 잘못됐나?"

"그럼 풍백(風佰)과 운사(雲師)도 있나요?"

".... 풍백과 운사라...."

우루가 중얼거리며 말을 돌리는 듯 하자 지연과 동현은 입술이 타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며 우루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런 둘의 눈빛을 느꼈는지 우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운사는 아마 맥이 끊어졌을꺼야. 풍백은...."

우루는 말을 멈추고 앞서 걷고 있는 고두언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풍백은 원래 고씨는 아니지만, 지금 구려의 왕이 풍백의 후손이지. 그래서 지금은 고씨라고 보면 될꺼야."

우루의 말이 끝나자 지연과 동현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고두언을 향했다. 그리고는 서로를 마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런! 천부인 세가지 중에서 둘만 남았나봐."

"운사는 사라졌나봐!"

둘이 놀라고 있을때 소외된 듯 조용히 있던 우건이 입을 열었다.

"잠깐, 천부인이 원래 사람이야? 학교에서 배울땐 물건이라고 한거 같은데..."

우건이 던진 물음에 지연과 동현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우루를 쳐다봤다. 우루는 그들을 이상한 물건을 보듯 쳐다보다가 그래도 말할 마음이 들었는지 이내 대답을 했다.

"천부인은 그런게 아니야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풍백은 바람을 다스리지만, 우사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졌지. 운사는 구름을 부르는 힘을 가졌고, 가장 약하지만, 운사가 없으면 풍백은 반대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우사는.... 독립된 힘을 쓸 수 있을 만큼 강하지만, 풍백의 제어가 없으면 제대로된 부름을 할 수 없다. 고로 천부인은 세명이 모였을때 안전하고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루의 설명이 되는 동안 지연과 동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러다 우루의 말이 끝나자 바로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럼 우사라는...."

"우사는 그럼...."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당황해서 말을 멈췄다. 우루는 그 모습이 웃겼는지 크게 웃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하하하, 뭘 물어보는건지 알겠어. 아까 말했듯이 우사는 혼자서 힘을 쓸 수 있을 만큼 강하지. 그래서 아직도 우사는 존재한다. 아까 내가 누이를 물어봤지? 그녀가 지금의 우사다!"

우루의 말이 끝나자 앞쪽에서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걷고 있는 고두언을 제외하고 모두 놀람에 빠져들었다. 학교에서 배우던 천부인, 그 진짜 비밀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게다가 잘 하면 그 유명한 신화 속의 우사를 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세사람은 설레기 시작했다.

우건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단군신화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신화 속의 후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건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예전에 현우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역사라는 건 이야기꺼리를 남에게 알려주는 거라더니, 진짜 이야기꺼리네 이거....'

우건은 현우가 해준 말을 떠올리고 있자니 갑작스레 현우가 걱정되고 보고 싶어졌다.

', 어디있는거야? 살아는 있겠지?'

우건이 현우를 걱정하며 생각하고 있을 때 현우도 우건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째 이거 꼭 내가 우건이가 된 기분이군.'

현우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건 부루를 부르려고 입을 열었다가 당황한 때문이었다.

 

대략 5분전 상황....

 

', 계속 걷기만 해야하나? 어디로 가는걸까? .... 그냥 물어보는게 빠르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걷던 현우는 강물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앞서 걷는 부루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부루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될되로 되라는 심정으로 현우는 입을 열었다.

"저기, 부루 아가씨!"

현우의 부름에 부루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현우를 바라봤다.

"저기... 얼마나 더 가야되죠? 그리고 오라버니는 어디 있는건가요?"

현우가 질문을 던지자 가만히 현우를 바라보던 부루가 불쑥 질문을 했다.

"아가씨가 뭐죠?"

"..!!!"

현우는 당황했다. 부루와 이야기를 할때는 되도록 현대에서 쓰는 말은 안쓰려고 노력하며 대화를 했지만 아가씨 마저도 모를 줄은 몰랐다. 현우는 몰랐지만, 아가씨는 최근에 변형되면서 생긴 단어였다.

", 아가씨는.... 그러니까...."

현우는 설명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행하게도 부루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아기씨 말하는 건가요?"

"!!!!"

", 근데 난 아가는 아닌데요?"

다시 한번 현우는 당황했다. 아가씨의 어원이 아기/아가에다가 존칭 씨가 붙어서 파생된 줄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루는 당황하는 현우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후후, 잘못 말한건가요?"

"! 그건 아니고.... 그러니까...."

현우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깐.... 아가씨는 원래는 그쪽... 그러니까 부루씨가 말한 뜻이 맞는데... 제가... 아니 내가 있던 곳에서는 혼인 안한 젊은 여자 높여서 부르는 겁니다."

당황해서 횡설수설 설명을 끝낸 현우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현우를 보며 부루는 깔깔대며 웃어댔다.

"우호하핫, 무슨 뜻인지 대충 알겠어요. 근데 부루면 부루지, 부루씨 라고 부르는건 또 뭐죠? 오호호호홋"

현우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고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미안함을 느꼈는지 부루가 몇마디를 더했다.

"너무 창피해할껀 없어요. 어쨌거나 아가씨 꽤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부루의 말에 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루에게 고마운 감정이 들 정도였다. 이런 현우가 우건을 떠올린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우를 생각하던 우건은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우루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천부인이나 우사, 이런 이야기는 꽤 중요한 이야기 인거 같은데 친절하게 설명해준 이유가 뭐죠? 아무리 같은 동족이라고 해도 분명 우리는 포로나 마찬가지인데..."

우건이 꺼낸 말에 지연과 동현도 갑작스레 놀라서 우루를 쳐다봤다.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 웬만한 부족은 다 아는 이야기니까. 내가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건 동족이라서도 있지. 하지만 난 당신들이 확실히 내 동족인지 알 수 없군. 게다가 당신들이 하는 말을 다는 못 알아 듣겠어. 그게 궁금해서 나도 친절하게 답 해준거야. , 그럼, 당신들은 누구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지? 누구나 아는 것들도 잘 모르는 당신들이 참 궁금하단 말이야. 날 모르는건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내 누이동생을 모르는건 정말 이상하단 말야. 뭐 천부인도 잘 모르는거 보니 그럴수도 있겠군. 그럼 그건 그렇다고 하고, 다시 묻지. 당신들 누구지?"

우루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앞서 걷고 있던 고두언이 몸을 돌려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우루를 묵직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 궁금해 할건 없어. 그저 잃어버린 일행을 찾으러 온거 뿐이니까.”

우루는 걸음을 멈추고는 고두언을 빤히 바라봤다. 그 때문에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한참을 그렇게 고두언을 바라보던 우루는 다시 시선을 돌려 우건과 동현을 바라봤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 시간이 흐른 듯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일행을 바라보던 우루가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 그리 궁금해할건 없는건가? 우리 동족은 항상 그래왔지. 하늘 아래 가장 오만하면서 겸손한 종족…. 그게 우리지. 더 묻지 않기로 하지.”

우건과 동현, 그리고 지연은 부여우루 아니 해우루와 고두언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잠시 침묵에 빠져 있을 때 우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질문은 그만하기로 했으니 모두 움직이자. 야영지가 곧 나온다.”

말을 마친 우루는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했다.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별 말 없이 일행은 야영지라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지 대충 30분 정도 지나자 세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는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 하류 쪽에 인접해서 세워진 천막 비슷한 것이 세워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발웅, 별일 없었나?”

대사자, 오셨습니까? 여긴 아무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셨던 일은?”

누이동생 소식은 없었다. 첩지가 잘못된 모양이야.”

…. 역시 함정일까요, 지나들의?”

그건 알 수 없지. 단서가 발견되긴 해서 어쨌든 소구찬에게 다섯 데리고 계속 수색하라고 해놨다.”

,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누굽니까?”

발웅이라고 불린 사람이 우건 일행을 보고는 궁금증을 나타냈다. 우루는 잠깐 우건 일행을 쳐다보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툭 내뱉었다.

저들이 바로 단서야.”

?”

발웅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색 도중에 만났는데, 같은 동족이다. 저들이 숨어있던 동굴에 누이가 숨어 있었던 모양이야. 그들이 말한 방향으로 수색해보라고 구찬에게 말해뒀다. 어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족인건 확실하다. 잘 쉴 수 있게 자네가 알아서 잘 보살펴줘.”

, 대사자.”

발웅은 우루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멀뚱거리며 둘러보고 서있는 우건 일행에게 다가왔다.

난 계발웅이라고 한다. 대사자가 당신들을 부탁했지.”

계발웅의 말에 일행의 눈길이 그에게 향했다.

별 다른건 없고 쉴 자리를 마련해주라고 하더군.”

그의 말이 끝나자 우건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밝아졌다. 중간에 동굴에서 잠깐 쉬었다고는 해도 이곳에 오자마자 쫓기기 시작해서 같은 민족인 우루 일행을 만났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자, 서로 알아가는건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 이쪽으로….”

계발웅은 꽤 넉살이 좋은지 능숙하게 일행을 이끌고 천막이 쳐진 곳으로 안내를 했다. 꽤 넓은 실내를 가진 천막이었는데 중앙에는 조그마한 화톳불이 밝혀져 있었고, 털가죽으로 된 침낭 비슷한 것이 세개 놓여 있었다. 침낭이 세개 뿐이라 의아해 하고 있을 때 계발웅이 말을 꺼냈다.

서서 싸는 사람들은 여기서 자면 될테고....”

계발웅의 말에 모두 어이없어 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계발웅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앉아서...."

계발웅은 말을 하다 느껴지는 살기에 입을 다물고는 한 곳을 바라봤다. 계발웅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우건이 눈을 부릅뜨고 죽일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처자인가 보구만, 알았어. 그럼 여기서 둘 자고 다른 천막에서 자네랑 처자랑 자."

그의 말이 끝나자 고두언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하핫. 재미있군.”

고두언이 웃고 나서도 꽤 지나서야 무슨 뜻인지 깨달은 우건은 얼굴이 빨개졌고, 지연 역시 얼굴이 빨개졌다.

무슨 말을 하는죠? 터무니 없는 소리만 하는 사람이네.”

우건이 빨개진 얼굴로 투정부리듯 내뱉었지만, 계발웅은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능청스러운 어투로 말을 꺼냈다.

그래? 멍석 깔아줘도 못하는구만. 내 알바 아니고, 우선 먹을거 가져다 줄 테니 먹고 처자는 부루님 쓰던 천막에서 쉬면 되겠소.”

말을 마치자 마자 계발웅은 대답은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천막 밖으로 사라졌다. 그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고두언의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와 어색함에 빠진 우건과 지연의 흠흠 거리는 소리, 가끔씩 나오는 동현의 처량한 한숨소리 만이 천막속에 가득했다.

 

대사자, 일행은 음식과 쉴 곳을 마련해줬습니다.”

그래…”

계발웅의 보고에도 우루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의 기색을 조심스레 살피던 계발웅은 걱정이 되는지 결국 질문을 던졌다.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으신겁니까?”

우루는 잠시 천막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계발웅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훈족도…. 걱정이긴 하지만 지나가 더 걱정이네.”

우루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계발웅은 바로 이어서 말을 꺼냈다.

지나는 예부터 우리의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훈족이 더 위협적이지 않을까요?”

그들은 차라리 우리와 비슷한 뿌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전쟁을 해도 완전한 살육전은 일어나지 않아. 그런데 지나와는 다르지. 지나는 우리를 두려워하면서 어떻게든 넘어서려고 하고 있지. 문제는 우리는 이미 여러 나라로 쪼개진 상태라 하나로 합쳐진 지나를 상대하긴 좀 벅찰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에겐 우사께서 계시질 않습니까? 우사의 힘이라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텐데….”

계발웅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우루의 얼굴은 펴지질 않았다.

그래. 우리에겐 내 누이동생…. 부루가 있지. 하지만, 지나족도 그걸 알고 있다. 게다가 우사가 진정한 힘을 보이려면 풍백의 도움이 절실하지. 구려에서 도와줄는지…. 아니 저들 일행을 보니 어쩌면 풍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삼족오의 힘을 찾는건데 그래야 천부인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애들 한테선 아무런 기별이 없나?”

우루의 말이 끝나자 계발웅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면서 삼족오와 천부인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삼족오는 지나인들이 천조(天鳥)라고 부르는 세개의 발을 가진 새를 뜻한다. ()나라-은나라 라고도 했음- 시절까지만 해도 근방의 모든 부족, 종족들이 신성시 하는 새였다. 지금의 지나족은 상나라를 무너트리고, 주나라를 세우면서 용을 신성시 하지만, 아직도 예맥한의 맥을 잇는 부족과 나라들은 삼족오를 신성시 하고 있다. 삼족오의 세 발은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하고 풍운우 삼사가 각각 한 축을 맡아서 과거, 현재, 미래를 조율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조선에서 관리를 했지만, 지나의 한()에 의해 진조선(진한)이 멸망하면서 삼족오의 진정한 힘은 사라졌고, 천부인을 관장하던 풍운우 삼사는 그 일부가 부여로 넘어왔다. 운사의 맥은 조선의 멸망과 함께 사라져 버렸고, 다행하게도 풍백과 우사는 부여로 넘어왔지만, 풍백의 후예인 계루부족에서 구려를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었다.

대사자, 편히 쉬십시요.”

생각에 잠겨 있는 우루를 보며 계발웅은 군례를 취해 보이고는 천막 밖으로 나왔다. 천막 밖으로 나온 계발웅은 하늘을 올려다 봤다. 구려를 빠져 나오던 급박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구려에서 태대사자의 반란 때문에 누명을 쓰고 떠돌다 고민끝에 백제에 몸을 의탁했던 순간…. 부여의 정통을 자처하던 백제에서는 우루와 부루가 해씨 라는 것을 알자 왕족의 성씨인 부여씨를 하사했었고, 백제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걱정한 태자의 눈총을 견디지 못하고 따로 몰래 빠져나오던 순간까지….

하늘은 항상 그렇지….”

하늘을 바라보던 계발웅은 한마디 푸념을 내뱉고는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강을 따라 걷던 현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맑은 하늘에 별무리들이 가득 들어차 서로 빛을 뽐내고 있었다. 현우가 멈춰 서있자 앞서 걷던 부루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했다.

뭐하죠? 좀 더 가야 해요.”

부루의 말에 현우는 시선을 부루를 향해 돌리고는 말했다.

밤이 늦었는데 쉴 곳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

“….”

부루가 대답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현우는 무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불쑥 부루가 말을 꺼냈다.

조금만 더 가면 쉴만한 곳이 있어요.”

그러고는 바로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바로 그녀를 뒤따라 가면서, 자신이 자꾸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내 말이 이상한가? 에휴…. 이상형을 만났다고 좋아했더니 이상한 인상만 심어줬나보다…. 내 팔자야…. 내가 뭐 그렇지…. 에혀…. 지금 무슨 생각하냐 박현우! 따지고 보면 너보다 2000살 연상이닷! 그리고 역사를 바꾸는 짓은 하면 안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둘은 어느새 강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초막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사냥꾼이 쓰던 초막인 듯 약간의 동물 노린내가 초막에서 풍겨 나왔다.

여기서 쉬면 되요.”

부루가 입을 열자 현우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말을 받았다.

혹시 내 말이 이상한가요?”

현우가 묻자 부루는 현우를 빤히 바라봤다. 초막 안은 어두웠지만, 쏟아지는 달빛 덕에 누군가를 알아보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달빛 아래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부루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현우는 생각했다. 도망치던 와중이라 거친 옷에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는 것들은 현우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부루를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현우에게 부루가 불쑥 말을 걸었다.

당신 말하는거 보면 진나라 영정 이후로 번조선(변한) 사람들이 쓰는 말 같아요. 그렇다고 똑같지는 않지만….”

갑작스런 부루의 말에 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가 말을 걸었다는 것도 있지만, , 영정, 번조선 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내가 말하는게그러니까지나들과 같이 살던 조선 사람이랑 비슷한가요?”

현우는 조심스럽게 부루에게 질문을 했다. 그녀는 역시나 현우를 빤히 바라봤다. 현우는 그녀가 또다시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이제는 뻔뻔하게 질문을 하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건 알아요. 내가 살던 곳은 바다가 보이는 곳이거든요.”

바다? 그게엄청나게 많은 강물로 된 그거 말인가요?”

바다를 본적 없어요?”

우루 오라버니는 본 적 있는거 같던데난 태어나서 한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어요. 다 말로만 들었을 뿐이지.”

바다는 그러니까그건그게그 뭣이냐에휴그냥 멋져요.”

현우는 무언가 멋진 말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우가 바보처럼 말을 끝내자 부루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우호호홋 하하핫

“….”

무안해진 현우는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때 다시 그녀가 웃음을 그치고는 말을 걸었다.

으호호미안해요. 그냥 좀 웃겨서…. 근데 당신 나 모르는거 맞죠?”

왜 갑자기 그걸 물어보죠?”

분명 처음 만났을땐 아는 것처럼 보이더니 나랑 말하는거 보면 날 모르는거 같거든요.”

…. 그건 내가 어디선가 본 그림과 너무 닮아서 놀랐던거 뿐이에요.”

그림이요?”

그냥 그런게 있어요.”

그래요. 알았어요. 우선 우루 오라버니에게 가야겠어요. 날 잡으려고 하는 쪽은 훈 보다는 지나족이거든요. 이걸 알려줘야 해요.”

지나에서 왜 당신을 잡으려고 하는거죠?

부루는 현우를 잠시 바라보며 고민을 하는 눈치더니 결심을 한듯 말을 꺼냈다.

왜냐하면, 난 해부루…. 부여씨를 받기 전에는 해씨 였고, 우사의 정통을 잇고 있거든요. 당금의 우사가 나에요.”

현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멍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 현우를 보면서 부루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나족이 삼족오의 힘을 찾았어요. 그들은 그걸 다룰 줄 모르니 누군가 그걸 다룰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거겠죠. 구려의 고씨와 연씨가 풍백과 우사의 맥을 이었지만 구려를 건드리는건 그들에겐 너무 큰일일테고, 부여가 망하면서 해씨는 구려로 이어졌어요. 근데 구려에서 일어난 반란 때문에 해씨들은 전부 구려를 나왔거든요. 그러니 날 잡는게 쉬워서 그런거겠죠.”

현우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풍백, 우사 이런 단어들 때문이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빠르게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방금 말한 풍백, 우사, 운사 이거 천부인 말하는거 맞죠?”

맞아요.”

“!!!”

현우는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너무 오래전 역사라서 신화로만 남아있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자신의 앞에 펼쳐진 것이었으니 놀라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럼 부루 아가씨가 현재의 우사 라는 건가요?”

그래요.”

그녀의 대답에 현우는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 할 길이 없었다. 자신이 신화의 한 부분과 마주하고 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아아아!!!!!!!! 우사라니!!!!!!! 우아아!! 하하하하핫

갑작스레 소리치며 날뛰는 현우를 보며 부루는 어쩔 줄 몰랐다. 훈족이나 지나들까지 다 아는 사실이 이렇게 놀라운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기 까지 했다. 현우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리를 치며 주먹을 공중에 휘둘러 대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부루에게 바짝 다가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방금 말했죠? 풍백을 이은 것이 고씨라고, 그럼 운사는운사는 어떻게 된거죠?”

부루는 갑작스레 눈을 빛내며 바짝 얼굴을 붙이고 질문을 던지는 현우 때문에 당황했다. 너무 가까워서 현우의 몸에서 풍기는 땀냄새까지 다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남녀 모두 격 없이 지내는게 풍습이기는 했지만 우사라는 신분 때문에 항상 정중하게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만 겪다가 살짝 정신나간 것처럼 행동하는 현우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루가 계속 대답을 하지 않고 멍하게 있자 답답해진 현우는 부루의 손을 덥썩 잡고는 다시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운사는…. 운사는 어디로 이어졌냐니까요!”

현우가 갑자기 손을 잡자 부루는 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잡힌 손을 빼내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사는 나도 몰라요. 이제 그만 물어봐요.”

갑작스런 부루의 행동에 현우는 정신을 조금 차렸다. 그러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 이런죄송합니다. 너무 기뻐서 그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미안하다고 하는 현우를 보자 부루는 웃음이 나왔지만 또다시 손을 잡을까봐 두려워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이제 그만 자요. 내일은 꼭 오라버니에게 가서 소식을 전해야 하니까.”

부루는 말을 끝내고 나뭇잎을 가져다 구석에 깔고는 자리에 누워 버렸다. 현우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맨 바닥에 누웠다. 그러나 자꾸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 때문에 잠에 빠져들 수 없었다. 한참을 누워 잠을 청해봤지만, 바닥에선 차가운 기운이 올라와 정신을 더욱 말똥거리게 만들어서 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부루 아가씨….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너무 기뻐서 그만…”

현우가 조그만 소리로 부루에게 사과를 했지만 잠에 빠져든 건지 돌아누워 있는 그녀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현우는 잠도 안오고 해서 그냥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초막 밖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하늘의 별과 달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부루가 말을 꺼냈다.

괜찮으니까 미안하다고 할꺼 없어요. 내일은 일찍 출발할꺼니까 그만 자요.”

“!!”

조그마하게 그녀가 건낸 말을 듣고 현우는 괜스레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꼭 그림속의 그녀가 아니더라도, 아니 사실 그녀가 그녀 일 가능성은 없지만, 현우는 그냥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자야 할 시간이 됐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현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현우가 잠든지 얼마 후 부루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뒤척여 바로 누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잠든 현우를 한번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

,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부루는 현우에게 몇마디 짜증을 속으로 던져주고는 잠을 청했다.

'새참's 블로그 > 소설- 시간의 모래(가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7편이요~ 많이 늦었죠. 미안요 ㅜㅡ  (3) 2011.02.11
6편이에요~~  (1) 2011.02.05
5편 입니다.  (1) 2011.01.27
소설 이어서 네번째~~  (2) 2011.01.24
3편 올려요~~!!!  (3) 2011.01.21
by 새참 2011. 2. 22. 0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