折花行(절화행) / 李奎報 (이규보)
折花行(절화행) / 李奎報 (이규보)
牡丹含露眞珠顆 (모란함로진주과)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절득창전과)
含笑問檀郞 (함소문단랑)
花强妾貌强 (화강첩모강)
檀郞故相戱 (단랑고상희)
强道花枝好 (강도화지호)
美人妬花勝 (미인투화승)
踏破花枝道 (답파화지도)
花若勝於妾 (화약승어첩)
今宵花同宿 (금소화동숙)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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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화행, 이 시는 젊은 연인의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연인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랑싸움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형상화하여 시를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미소 짓게 하는 이 시는, 장지연이 편집한『대동시선』(大東詩選) 제1권에 이규보의 작품으로 실려 있다.
이규보 (1168∼1241)
고려조 신흥세력으로 떠오르던 신진사대부의 일원으로, 막 서울로 상경한 중소지주 집안 출신. 어려서부터 기동(奇童)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재주가 있었다.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는 별명이 말하듯 두주불사, 활달한 시풍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또 침입한 몽골군을 진정표(陳情表)로 물리칠 정도의 문장가였다 한다.
12세기 고려시대 문장가인 이인로와 동시대를 살며 쌍벽을 이룬 문인으로, 귀족계층이었던 이인로가 전통을 중시하며 소동파, 황정견 등의 작품을 모방하는 범주에서 한시를 표현해왔다면, 신진 사대부 계층이었던 이규보는 과거의 형식에서 탈피, 당시로서는 생경한 경지를 개척하며, 전통적인 시작법 - 12세기 고려시대 Trend는 소동파 닮기였다. 현대는 브리트니 닮기인가? - 을 글 도둑질이라고 비난했다.
젊어서는 민중의 참상을 고발하는 시를 쓰기도 했지만 명종 20년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간 후 최충헌의 환심을 사서 출세길에 오르면서 현실 비판이 약해졌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백운소설(白雲小說), 동명왕편(東明王篇) 등 그의 작품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모두 정리돼 있다.
* 절화행 折花行 : 절화는 꽃을 꺾는다는 뜻이고, 행(行)은 악부시체의 하나입니다. 굳이 제목을 글자대로 번역하자면, 꽃을 꺾는 노래라는 뜻이 되겠죠.
* 모란함로진주과 牡丹含露眞珠顆 : 모란함로, 모란꽃이 이슬을 머금었습니다. 함초롬히 이슬이 맺힌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진주과, 진주처럼 영롱합니다. 과는 낟알, 이슬방울을 말합니다. 모란은 대략 5월, 6월경에 꽃이 핍니다. 이슬이 내린 걸로 봐서 저녁때이군요. 이슬은 해가 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합니다. 한밤중이 되면 이슬방울이 제법 굵어집니다. 모란꽃에 이슬방울이 진주처럼 맺혔다고 하였으니, 초저녁은 아니고,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때쯤인 것같습니다. 5월 초여름 밤, 활짝핀 모란꽃, 맑은 이슬방울, 이런 개념들은 익을대로 익은 풍염한 여인, 낭군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여인의 몸을 연상케 하는 시어들입니다.
* 미인절득창전과 美人折得窓前過 : 미인은 아름다운 여인이지요. 건전한 생각만으로는 신부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만, 한시에서 이런 경우 반드시 정처 신부만을 의미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절득은 꺾었다는 뜻입니다. 꽃을 꺾는다는 개념은 남자가 여인을 품에 안는 것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묘한 여운을 남기는 대목입니다. 꽃을 꺾어들고, 창전과, 창 앞을 지나갑니다.
* 함소문단랑 含笑問檀郞 : 함소, 미소를 머금은 것입니다. 단랑은 낭군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낭군에게 묻습니다.
* 화강첩모강 花强妾貌强 : 화강, 꽃이 낫다 라는 뜻이죠? 여기서 강이라는 글자는 더 낫다라는 뜻입니다. 꽃이 더 나아요? 첩의 모습이 더 나아요? 라고 낭군에게 묻는 것입니다. 첩이라는 글자는 정처, 즉 아내를 의미하는지 애인 사이인 애첩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일상으로부터 약간 벗어난 경우가 더 감미로울 것같습니다.
* 단랑고상희 檀郞故相戱 : 고는 일부러, 상희는 희롱할 생각으로의 뜻입니다. 낭군이 짐짓 장난을 칩니다.
* 강도화지호 强道花枝好 : 강도는 억지로 말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화지도는 꺽여진 꽃가지가 좋다는 것이죠. 꽃이 당신보다 더 이쁘다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 미인투화승 美人妬花勝 : 투X승은 질투심이 X에 일어나다라는 뜻입니다. 미인은 낭군의 말을 듣고서 질투심이 발동하였습니다.
* 답파화지도 踏破花枝道 : 답파, 밟아서 깨뜨리다. 꽃을 밟아서 깨부수는 것이니까, 발로 밟아 짓뭉개는 것이겠죠. 화지, 꽃가지를. 끝에 있는 도 자는 말한다는 뜻입니다. 미인이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 화약승어첩 花若勝於妾 : 꽃이 만약에 첩보다 낫거들랑. 승어첩, 첩보다 낫다 라는 뜻입니다.
* 금소화동숙 今宵花同宿 : 금소, 오늘밤. 화동숙, 꽃과 함께 잠자다 라는 말입니다. 이 시의 배경은 늦은 저녁입니다.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낭군은 지금 당장 저 미인을 품에 안고 싶어 합니다. 겉으로는 농담도 하고 넉넉히 여유롭지만, 내면에는 밀고당기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숨어 있습니다. 낭군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미인이 짐짓 딴청을 부리고 있군요.